아름다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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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가 만난 사람

"멋진 자동차, 예쁜 여자친구"- 맹상학 마르셀리노신부님

안젤라Angella 2008. 9. 25. 16:37

 

 

       "멋진 자동차, 예쁜 여자친구" - 맹상학 마르셀리노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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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그야말로 그분께서 제작하신 한편의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시간의 강물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사제의 여정이 마냥 행복하다.


서른 살 무렵 나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멋진 자동차도 있었고, 예쁜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성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연구소를 다니면서도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참 열심히 했다.


대전 자양동의 복지시설과 판암동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적어도 한 달에 서너 번씩 달려갔다.


벽지를 갈아드리고, 먹을 것을 나누고, 용돈을 드리고, 그리고 말벗도 해드렸다.


성가정을 향한 소박한 꿈을 안고 생활하던 중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이별을 하게 되는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다.


이별의 상처가 너무 컸다.


우울증이 생겨 식욕도 잃고, 불면증으로 날마다 밤을 새우다보니 신앙생활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때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죽고 싶은 생각뿐,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가 마침 판공성사 때였다.


그래도 성사는 보아야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도룡동성당에 갔다.


성사를 기다리는 줄은 마치 고속도로의 정체된 차들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슴은 그 차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처럼 마냥 답답했다.


마침내 차례가되어 고해소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마치 재와 연기를 뿜어내는 분노의 활화산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고해사제를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 하느님 너무너무 미워하고 저주한다. 왜 하필 나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냐.


그렇게 교회에서 봉사하고 성가정 이루면서 착하고 소박하게 살려고 했는데,왜 하필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시냐.


그래서 하느님 저주한다."하고 고백했다.


그렇게 몇 십 분을 눈물콧물 흘리며 울부짖고 나니 고해소에서 신부님이 말문을 여셨다.


"나도 잘 모르겠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에


"이 좁은 인간의 머리로는 잘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형제님에게 좀 더 큰일을 하시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보속으로 요한의 첫째 편지를 읽어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성경을 펼쳐서 읽어내려 가는데,


성경의 이 구절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도 가고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요한 4,15-17)


내 영혼을 뒤흔든 이 성경구절은 육신의 쾌락과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나를 온전히 하느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였고,

 

인간의 거룩한 영혼과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바오로 사도처럼 지금까지 편안하게 앉은 채로 즐기면서 살아왔던 삶의 말안장에서 떨어진 다음 해인 1998년 3월,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전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7년의 신학생생활은 도룡동성당이 아니라, 성당을 옮겨서 2년 동안 청년레지오 활동을 한 번동성당에서 하였다.


9년이라는 시간은 죽을 만치 고통스러워했던 과거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2005년 1월25일 마침내 사제수품 후 소임받은 첫 임지가 희한하게도 도룡동성당이었다.


주임신부님께 미리 인사드리려고 성당에 갔는데, 입구에 경당이 있어 들어가 예수님께 꿇어 기도드렸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총과 사랑에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나중에는 온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고 망치로 크게 얻어맞은 듯 굳어버렸다.

 

내가 기도하고 있던 바로 그 자리는 9년 전 내가 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그 경당이었다.


하느님을 미워하고 저주했던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의 거룩한 사제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었다.


그때야 깨닫게 되었다.


왜 그런 아픔과 고통을 주셨는지..... .


하느님께서는 9년이 지난 다음에야 답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좀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는 고해사제의 말처럼, 하느님께서 이 미천하고 악한 사제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울고 또 울었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고통이 없으면 몸만 자라고 영혼은 자라지 않는 식물인간과 같다." 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며, 그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좀 더 큰일을 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에게 구원을 선물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지고 있고, 품고 있는 고통의 십자가 위에 부활이라는 향기로운 꽃을 피워주실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고통을 이겨내지 않고 그리스도 향기를 풍기는 사람은 없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에 대하여 반드시 답을 주신다.


그러나 그 답은 지금 줄 수도, 아니면 몇 년이 흐른 다음에 줄 수도,


아니면 우리가 하느님 품에 들어가서야 듣게 될 수도 있다.


답을 듣게 되는 그때가 깨달음의 순간이며,구원의 순간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는 순간이다.


이 세상의 것에 절대로 얽매이지 않는 부활의 날개를 얻게 되는 은총의 순간이다.


이렇게 고통을 통해 얻게 되는 은총의 순간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임을 깨닫게 되어서 매일매일 행복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늘에 펼쳐진 저녁노을을 볼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하느님의 종인 이 미천한 사제에게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카톨릭 다이제스트>에 게재되었던 글.

맹상학 마르셀리노 신부님이 쓴 글이다.

 

 

 

 

 

맹상학 마르셀리노 신부님을 처음 뵌건  2005년 2월 카톨릭대전교구 "사제서품미사"였다.

 

마르셀리노 신부님은 "사제서품" 대상 신부들 중에 가장 빛나는 후보였고(수석졸업자가 아니었나 싶다) 마흔살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된 마르셀리노 신부님이

 

우리 성당 보좌 신부루  발령받아 오셨다.  마르셀리노 보좌 신부님은 외국어에 능통하였다.  우리 본당의신자중에는 본당의 특성상 외국인 과학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들과도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마르셀리노 보좌 신부님은 과묵한 외모와 함께 중후한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는데,  미사 집전중에 사제의

 

중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연세 드신 분들께는 그 분들 정서에 맞게,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 정서에 맞게

 

학생들에게는 그 학생들의 정서에 맞게 친화력있게 처세를 잘 하였다.  본당에서 보좌신부는 주로 저녁미사를 집전하게 되어 있고

 

마르셀리노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게 위해 주중저녁미사에도 자주 참석하였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주중엔 저녁미사밖에 시간이 없기두 했지만,,,,,

 

2년간의 본당 근무를 마치고 맹상학 마르셀리노 보좌신부님은 우리 본당을 떠나셨다.  해외교포사목활동을 하기 위하여,,,,,

 

마르셀리노 보좌신부님 자리에 젊고 훤칠한 미카엘 보좌신부가 발령받아 왔고,

 

 마르셀리노 보좌신부가 우리 본당을 떠나구 한 번의 가을이 왔고

 

이제 다시 또 한 번의 가을이 오고 있다.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던 마르셀리노 신부님은 잘 계실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