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정

너는 나의 계절이고 나는 너의 봄이기를,,,,,,,

아름다운 여정

Lake Louise

천년온천 유성의 천가지 즐거움, 유성온천문화축제

안젤라Angella 2013. 5. 11. 06:00

 

 

 

'유성온천문화축제'가 10일부터 12일까지 계룡스파텔과 갑천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유성구는 10일 오후 5시 충남대 정문에서 계룡스파텔까지 취타대와 기마대를 앞세운

 

200명 규모의 어가행렬을 시작으로 축제의 막을 올렸다.

 

오후 7시 계룡스파텔 잔디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의 사회로 YB밴드, 장윤정, 노라조가 출연하는

 

축하공연이 진행되었고 오후 9시50분 갑천에서 중부권 최대규모의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축제가 진행되는 사흘 동안 유성호텔에서 갑천까지 온천로 일원에 물로켓체험과 티셔츠 페인팅 등

 

가족이 즐길 수 있는 60개의 체험부스가 운영된다.

야외족욕체험장은 녹차와 아로마탕으로 특성화하고 계룡스파텔 주차장에 마련한 온천수 야외 물놀이장은

 

지난해보다 규모를 키워 어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또 대전대한방병원 의사들이 축제장에서 관람객에게 직접 뜸과 침을 놓는 '한방건강 체험관'과

 

1920년대 유성온천의 사진과 신문기사를 볼 수 있는 '온천주제관'은 관람객에게

 

또 다른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갑천변에는 전기로 움직이는 코끼리열차 2대가 아이들을 태우고 유림공원을 오가며, 젖소 우유를 직접 짜고 치즈를 만들어보는

 

 '도심속 목장체험'이 준비돼 있다. 야간에는 온천로 일원 이팝꽃나무에 LED조명이 켜져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20개의 먹거리코너에서는 떡갈비와 녹두전, 케밥 등 별미를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열기구 탑승체험과 전민동 상여놀이, 길거리농구대회, 마당극 줄타기 등이 계획돼 있다.

축제기간 유성온천 9개 대중목욕탕과 32곳 식당에서는 이용요금과 음식값이 할인된다.

 

 

 

 

10, 11일 오후 5시에는 충남대∼온천로 구간에서 어가행렬과 제등행렬 등 거리퍼레이드가 열렸다.

 

 어가행렬은 조선 태조가 유성온천에 행차하는 것을 고증을 통해 재현한 것으로 유성온천의 자랑 중 하나이다.

 

오후 10시부터는 갑천변에서 불꽃쇼가 펼쳐졌다.  불새 2마리가 밤하늘을 날아가고,

 

200m 구간에 걸쳐 파노라마식 불꽃쇼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유성온천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온천동과 구암동에 있는 온천이다.

유성온천의 개발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측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 안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기록과

 

태종이 전라도 임실에서 열린 강무임어(講武臨御)를 위해 행차하던 중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가 시작될 무렵에는 임금이 쉬어갈 정도로 훌륭한 온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성온천수를 봉송하는 모습

 

 

 

 

유성온천은 대전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약 11km 떨어진 곳에 있다. 수온 42~55℃(50℃)정도이다.

 

이 일대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지층인 시생대 말기의 화강편마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3곳을 시공해 쓰고 있으며, 1일 용출량 2만t으로 화강암층 285~600m 깊이에서 취수하고 있다.

 

각종 피부병·신경통·관절염·위장병·당뇨병·부인병·소아마비·두풍(頭風)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성의 온천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방치되었던 온천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07년부터였다.

 

유성에 정착한 일본인 가운데 스즈끼(鈴木松吉)가 봉명동 유성천 남쪽에 있는 온천탕 부근을 개발하고

 

 1910년에는 대전온천주식회사를 창설함과 동시에 목조 건물을 건축하여 1913년부터 본격적인 개업에 들어갔다.

 

상당히 한적한 전원지대의 온천지대로 출발한 유성온천은 1904년 6월에 대전역이 신설되고, 유성온천이 개업하는 1913년에는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 옛 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가운 샘에서 찬물을 선호하는 편이었으나

 

일본인들은 뜨거운 온천을 좋아하여 유성온천의 처음 손님들은 일본인들이 절반이상을 차지했었다.

 

1919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이곳이 우수한 라듐 온천임이 알려졌고, 유성온천장이 세워지면서 근대적 온천 개발이 시작되었다.

 

 

 

유성온천에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온천장이 들어선 것은 유성온천이 성시를 이루기 시작한 1932년이다.

 

김 갑순이 유성관광호텔 자리에 온천장을 처음 신설하였는데 특히 이 시기는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 되어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고 개발이 진행되는 때였다. 이후 현재 호텔 리베라의 전신인 만년장이

 

 해방 후인 1958년에 문을 열었으며   많은 목욕 및 숙박시설이 늘어나게 되었다.

주로 특수층의 관광 휴양지로 알려졌던 유성온천은 8.15광복 후 일반의 이용도가 급격히 높아져

 

대중화의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들어 이곳이 본격적으로 개발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탕거리가 있는 봉명동 온천지구는 934,045㎡(282,550평)이다. 탕거리에 굴착된 온천공은 모두 35개 공으로

 

이중 29개 공에서 온수를 취수한다. 온천의 적절한 보호와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1981년 온천지구로 지정하였다.

 

특히, 봉명동을 비롯한 유성온천, 엑스포 과학공원을 중심으로 1백7십7만2천평을 1994년 8월 31일 유성관광 특구로

 

지정함으로서 유성온천이 관광지로 비약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다.

 

 

전기로 움직이는 코끼리열차.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유성온천거리의 가로수 이팝나무, 추운 봄날씨로 인해 봄이 더디게 오고 있어서 이팝나무가 덜 개화한채이다.

 

 

유성온천문화축제의 조경담당이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이 보였다.

사용된 꽃의 분량이 많을뿐만 아니라 예쁘고 화려한 꽃들이  축제장을 빛내고 있었다는.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꽃들의 상태는 싱싱하고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위해 조경담당자가 많은 노력을 했으리라.

 

 

유성온천문화축제장에서 TJB의 한 프로그램이 녹화되고 있었는데,

스튜디오 오른쪽에서 두번째 하안티셔츠 입은분이 허태정유성구청장.

 

 

야외공연장에서는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었고.

 

 

유성구청의 마스코트 "유성이"

 

 

유성온천 족욕체험장 입구

 

 

유성온천 족욕체험장에서 족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유성온천문화축제장 입구, 유성우체국 부근.

 

 

 

 

 

 

 

                                                                                                          * 이 기사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청 블로그기자단 활동으로 제작한 컨텐츠입니다.

                                                                                               이 기사는 유성구청 홈페이지와 유성구청 공식블로그에서도 보실수 있습니다.

 

2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