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 비포 선라이즈 > 가 개봉된 뒤, 유레일패스로 유럽을 여행하는 건 공식적인 '낭만적' 이벤트가 되었다.
프랑스 억양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셀린느(줄리 델피)와 미국인 여행객 제시(에단 호크)는 하룻밤 동안 비엔나를 여행하며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 감정의 실체를 확인하기에 하루는 너무 짧다. 그렇게 1편이 끝나고 9년 뒤인 2004년 < 비포 선셋 > 이란 제목의 속편이 등장한다.
영화는 그들이 정말 사랑한다는 걸 파리를 배경으로 확인시켜주는데, 3편 < 비포 미드나잇 > 은 당시의 플롯들을 고스란히 잇는 영화이다.
동일한 감독과 배우들이 뭉쳐,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다.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는 2편에 이어 이번에도 각본에 이름을 올렸다.
일상적이면서도 생기발랄한 대사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칼라마타 공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셀린느와 제시는 이미 결혼한 상태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인물들은 그리스 남부의 도시 펠로폰네소스에 머물고 있다.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른 제시가 이곳의 레지던시에 초청받으며, 가족들을 함께 데려온 것이다.
신화와 비극을 안고 있는 유적들을 배경으로, 인물들은 음식을 나눠먹거나 한가로이 산책하고,
또 사랑에 관한 의견들을 나눈다. 영화는 그리스에서의 6주 중 마지막의 하루만을 담는데,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여전히 '둘이지 하나가 아님'을 몸소 실천해 보인다.
그럼에도 둘의 따사한 밸런스는 하나가 되어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배우들의 모습이 설마 사랑스럽겠냐는 의문은 버려도 좋다.
딸아이의 사과를 훔쳐 먹는 에단 호크의 모습이, 그리고 이제 더이상 가녀리지 않은 줄리 델피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파릇한 이십대처럼 발랄해 보인다.
100여분의 상영시간 동안 영화가 비추는 장소는 총 다섯곳이다. 차례로 '공항과 레지던시, 산책로와 호텔, 그리고 바닷가식당'을 인물들은 거닌다.
1편의 기차가 자동차로 대치되고, 서로를 알기 위해 만든 '역할 게임'이 화해의 장치로 변하는 등 바뀐 요소 면면을 살펴도 재밌다.
처음에 감독은 3편의 배경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섭외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를 방문한 뒤 마음이 바뀌었고, 결과는 보다시피 성공적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게 정말로 실재하는 우리의 삶이란 걸,
어쩌면 진정한 타임머신 작동법은 '사랑하는 감정' 자체임을 영화는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 비포 미드나잇 > 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삶의 보석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추억과 꿈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이 순간의 기쁨을 봉제하는 방법을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잘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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