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리사는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을 말한다.
궐리사는 강원도 강릉, 충청북도 제천, 경기도 화성(수원)등에 있었으나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과 경기도 화성의
궐리사만 남아 있다. 1687년(숙종13)에 송시열이 건립을 추진하였고, 권상하 등 송시열의 제자들이 1716년(숙종42)에
노성 이구산에 세웠다. 그 후 중국에 가는 사신 편에 공자의 영정을 부탁하여 숙종 44년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791년(정조 15)에는 송조 호현(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주희)의 영정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05년(순조5) 관찰사 박윤수 등이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웠다. 현재의 규모는 당시 규모보다 축소된 것으로, 일명 춘추사라 한다.
건물 배치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고 외삼문, 강당인 현송당, 내삼문, 사우인 궐리사 그리고 모성재와 관리사, 문간채 등이 있다.
궐리사의 남쪽에 석주가 있는데, 사용 목적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네모난 기단 위에 배흘림의 각주석을 세우고 탑의 지붕돌을
그 위에 올려 놓은 모습과 '궐리'라는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아 아마 궐리사의 표시물로 이용된 듯 하다.
노성 궐리사는 옛 노성현 관아 소재지가 있는 노성산은 공자가 자란 마을인 궐리촌과 지형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구산이라고
불리웠으며, 고장의 명칭도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와 연관지어 정조대에 노성현으로 바꿨다고 한다.
궐리사는 노성산 자락 아래에 노성향교, 소론의 영수인 윤증의 고택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건물은 향교와 마찬가지로 홍살문, 외삼문, 강당인 현송동, 내삼문, 사우인 궐리사가 일자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조선후기 당시 노론의 영수의 우암 송시열이 소론의 영수인 윤증이 살던 곳에 향교 대성전과 별도로 공자의 사당을 세웠던 모습에서
당시의 치열했던 이념논쟁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노성현에는 윤증을 모신 노강서원, 공립 교육기관인 향교와 별도로
궐리사를 두고 있으며, 인근 연산현에 김장생을 모신 큰 서원인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많은 서원이 있었으며
지역내에서도 학문적 전통과 당시 사회를 반영한 많은 논쟁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성 궐리사 출입문인 솟을대문 형식의 삼문.
노성 궐리사 강당.180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규모도 다른 향교나 서원에 비해서 큰 편이다.
현송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강당건물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중앙에 넓은 대청마루에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는
일반적인 서원이나 향교의 강당과는 달리 중앙부처 관아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궐리사 동쪽편에 공자와 제자들의 석상을 세워 놓고 있다. 아마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 용도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는 '궐리'라는 글자가 음각된 돌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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