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의 상징인 김옥균선생은 중국과 일본의 선진 문물을 접하면서 점차 조선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 방법으로 조선을 개화시키려 하였으나반대 세력인 수구파의 방해로 개화 사업에 좌절을 느끼던 김옥균과 개화파들은
무력에 의한 혁명을 계획하게 되었다.이른바 1884년 12월 04일 갑신정변이 그것이다.
비운의 시대를 만나 개화를 꿈꾸었지만,,,
한국 근대사의 상징인 김옥균선생은 1851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난 재주 많은 청년이었다.
김옥균은 공주시 정안면 출신으로 1851년 안동김씨 김병태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6세때 당숙 김병기에게 입양되어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전해지는 바로는 학문 뿐 아니라 문장, 시, 글씨, 그림 등에도 탁월한 소질을 발휘한 다재다능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에서 역적으로 지목된 김옥균은 일본 오가사와라 섬에서 훗카이도까지 10년간 떠돌았다.
김옥균은 책을 읽거나 시를 짓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바둑으로 망명의 고독함을 달랬다.
오가사와라 섬에는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고 한다.
김옥균은 1888년 오가사와라 섬에서 훗카이도의 삿포로로 유배지을 옮겨 기거했다.
여기에서 그가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며 훗날을 도모한 몇 가지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김옥균은 1894년 중국의 이홍장을 만나 조선의 중립국화와 삼화주의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고자 햇으나,
낯선 땅에서 홍종우에에 의해 총에 죽고 말았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충청남도 공주시가 59회 백제문화제를 기념하여 공주역사인물 특별전으로 마련한 "김옥균, 일본 망명 10년의 기록"展이
공주시 웅진동 고마 3층 역사인물전시관에서진행되고 있는데, 비운의 시대를 만나 개화를 꿈꾸었지만,,,
혁명의 주체에서 고단한 망명가로 일생을 마쳐야 했던 혁명가 김옥균의 갑신정변 이후
10년 일본 망명기간 동안의 기록을 담은 전시회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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