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페르시아 정원에서 중국의 작은 안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성에 있는 크고 화려한 정원에서
교외의 소박한 정원에 이르기까지 장미는 영원하다.
그런데 시인 로사르는 왜 장미를 덧없는 생명으로 표현했을까?
오늘날 순수하게 장식용으로만 쓰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미,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모습이 숨어 있다.
장미는 그 오랜 역사 만큼이나 많은 상징성을 내포한 식물이다.
아프로디테가 침묵의 신에게 장미 한 송이를 주면서 도움을 요청했다는 신화 이래 장미는 비밀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됐다. 실제로 중세시대 원탁의 복제품 중앙에 새겨져 있고, 밀교 조직의 상징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보보의 문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종교에서 장미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꽃이다.
장미 화관이나 하얀장미가 종종 순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페르시아의 시에 이르기까지 장미는 사랑과 여성의 상징이었다.
1896년 아벨 벨몽은 "신이 만든 것 중에서 완벽한 것은 여자와 장미 두 가지뿐"이라고 했을 정도.
그 어떤 꽃도 장미만큼 여성의 이미지에 많이 비유되지 않았다.
멀리 가서 찾을 것도 없이 누구나 한 번은 읽었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도 장미는 분명 "여성"이다.
시인 롱사르가 노래했던 덧없는 생명으로서의 장미도 있다.
한 번 피고 지는 것은 모두 같은데, 모든 꽃 가운데 굳이 싱싱하고 화려하지만, 짧은 인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장미를 선택한 이유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다만 봄에 잠깐 피었다 덧없이 지는 야생 장미의 모양새 때문에
인생의 무상함과 부활을 상징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모양에 있어서도 장미는 모든 꽃을 압도할 만큼 다양한 종류를 자랑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 그 중에서도 5월과 7월 사이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라이레로즈 장미원을 방문한다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장미가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3500종의 장미를 만날수 있는데 과거에는 8000종에 이르는 장미를 보유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원래 장미는 정원의 여왕이 되기 전부터 들판에 흔히 피던 야생화였다.
북아메리카, 아시아, 알프스에는 지금도 야생종이 자라고 있다.
가시투성이의 덤불, 다섯 장의 꽃잎에 소박한 꽃부리를 가진 들장미와 야생 장미들은
오늘날 재배되고 있는 화려한 원예종 장미의 조상이다.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미개척지로 남겨 졌던 푸른장미의 등장도 머지않았다고 한다.
살아다오,
나를 믿거든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 꺾어라,
생명의 장미를.
-롱사르의 <엘렌에게 바치는 소네트> 중에서
장미(Rose)는 성모마리아였고, 침묵의 서약이었으며, 사랑의 밀사였다.
또한 장미는 약초이자 디저트였으며 사치품이었다.
장미를 연인을 위한 선물쯤으로 여겼다면 이제 편견을 깨자.
당신의 피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삶에 향기를 더하는 오브제로, 혀끝을 호사스럽게 하는 디저트로,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영감의 원천으로, 장미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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