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등대 불빛 속에 쓴 편지
한동안 바닷가를 여행할 때면, 나는 갈매기를 찾는 버릇이 생겼지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갈매기들이 다 동일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먼 바다의 푸른빛, 동경, 긴 항해, 자유로운 비상, 그것들이 갈매기의 눈빛을 이룬 것은 아니었을른지요.
오후내내 걸었습니다.
구룡포읍에서 장기곶의 맨 끝마을인 구만리로 가는 911번 지방도로는
파도소리가 싱싱하게 살아 있는 길입니다.
동해안의 어촌 마을들치고 파도소리가 이어지는 이곳 길 위에서 듣는 파도소리는
봄 언덕에 무더기로 피어난조팝나무나 산당화의 꽃사태를 대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꽤 많은 바닷가를 지나온 적이 있지만 파도소리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그 중에서도 강사리에서 듣는 파도소리는 유독 맑고 고왔습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때마침 한 사내가 지나가기에 붙들고 물었습니다. 왜 바닷가 이 마을의 이름이 강사리지요?
나이 오십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대뜸, 이곳 물빛이 강처럼 맑고 모래가 고운 때문이오. 라고 말했습니다.
한 시간쯤 강사리의 파도들과 모래들 속에서 보냈습니다.
맑고 빛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
시, 사랑, 추억, 무지개, 들국화, 길, 시간,,,,,,,
맨발로 파도와 모래들이 만나는 경계선을 따라 걸으며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말들을 하나씩 생각했습니다.
어떤 파도들은 내 발등을 덮고 무릎위의 옷을 적시기도 하였습니다.
그 느낌이 오래 헤어졌던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나는 필경 고질병이 도지고 말았답니다. 그 중의 한 파도에게 말했지요.
안녕, 나는 시 쓰는 사람이야,
짧은 여행 중에 있지. 시가 뭐냐고? 맑은 거지.
수평선 끝에서 빛나는 햇살 같은거.
영원히 바닷물을 푸르게 하는 신비한 염료 같은 거.
파도들이 내 발등을 다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고통이나 싸움. 상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을 탓하지 마시길,,,,,,
그 맑은 파도의 눈빛을 대하면서 그런 쓸쓸한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답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중에서
'비단 구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원한 물방울 놀이터 한밭수목원 바닥분수 (0) | 2009.06.13 |
---|---|
문화예술의전당 야외원형극장에 활기가 느껴질때 (0) | 2009.06.04 |
부드러운 카리스마, 이런 리더가 돋보입니다 (0) | 2009.05.24 |
오래오래 꽃보면 꽃마음이 되지요 (0) | 2009.05.21 |
충청투데이 따블뉴스 필진에 위촉되었습니다 (0) | 2009.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