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아름다운 땅이었던 조지아주 타라의 농장주의 장녀 "스칼렛 오하라"는 당차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녀는 애슐리를 사랑하고 있고, 또한 애슐리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애슐리는 그의 착하디 착한 사촌 멜라니와 결혼을 하고 맙니다.
화가난 스칼렛은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기로 되어있던 멜라니의 남동생 찰스와 결혼해 버립니다.
하지만,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찰스는 입대하자 마자 전사하게 되고, 아직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스칼렛은,
애슐리의 부인인 멜라니의 출산이 가까워지자 북부군이 애틀란타까지 들어왔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멜라니와 함께 남아있게 됩니다.
마가렛 미첼의 <Gone with the wind>의 자필 원고.
마침내 멜라니가 아이를 낳자, 스칼렛은 결혼전 우연히 만났던 거만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레트 버틀러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북부군을 피해 멜라니와 함께 고향 타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고향에서 그녀를 맞은 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실성, 그리고 지독한 가난이었습니다.
<Gone with the wind>의 초판본. 마가렛 미첼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어요.
이 때, 전쟁을 통해 큰 돈을 벌었다는 레트의 소식을 듣게 된 스칼렛은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로 인해 처음 만났던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트를 만나러 갑니다. 변변한 외출복이 없이 커튼으로 직접 만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레트 앞에 서지만,
레트는 스칼렛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스칼렛은 더욱 레트를 증오하게 됩니다. 또 다시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생의 약혼자와 결혼한 스칼렛은 남편의 자금으로 억척스럽게 제제소를 운영합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배역을 맡았던 비비안 리.
사소한 다툼으로 남편 프랭크마저 총에 맞게 되고, 스칼렛은 평소의 미움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돈 많은 레트의 구혼을 받아들여,
레트와 결혼하게 됩니다. 멜 라니의 죽음과, 애슐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 멜라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칼렛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레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애슐리에 대한 스칼렛의 집착에 마음이 멀어져간 레트는 스칼렛을 떠나고 맙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레트였다는 사실을 안 스칼렛은 뒤 늦게 레트를 되 찾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고향 타라로 되돌아갑니다.
한 여인과 이에 얽힌 사랑와 욕망, 기타 시대상황과 맞물려 스펙타클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이 영화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 그녀는 진정한 사랑이 뭔지는 몰랐던거 같습니다.
다만 그녀는 화려한 파티를 좋아했고, 자신을 따라 다니는 남자들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그 앳된 아름다움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그녀는 정녕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갖기를 원했고, 아니 갖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가질 수 없었고, 그 갖고 싶은 욕망이 자기 스스로 사랑이라 생각했습니다.
애슐리. 그래서 그녀는 그를 위한 인생을 살고자 했습니다.
적어도 그의 마음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멜라니와 결혼한 애슐리를 바라보며 애슐리와 친척인 한 남자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고 전쟁이 일어나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도 그의 남편보다는 애슐리 걱정을 했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 때 그녀의 애슐리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너무도 어리석었습니다. 진실된 사랑아닌 사랑이라 생각되는 그녀의 감정.
전쟁 때문에 버틀러의 도움을 받고 고향 타라로 돌아 온 후 그녀는 조금 더 강인한 여자가 됩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배우는 클라크 케이블인데요,
그가 주연한 가장 유명한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 영화는 클라크 케이블이 사망한 후에야 개봉이 되었으니, 정작 본인은 자신의 영화가 히트하는것을 보지도 못한셈입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았던 광할한 남부의 농지는 목화밭이 배경이고,노예들이 재배하던 주요 작물이
바로 목화Gossypium indicum였습니다. 목화는 옷감과 기름의 원료로 노예와 함께 당시 미국 남부를 지탱해주는 기반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았던 목화는 하얀 솜털에 싸인 씨앗덩어리인데, 막상 목화꽃이라 하면 잘 모르기 쉬운데요,
하지만 전국적으로 많이 재배되었 왔으며, 현재에도 전북이나 충남은 상당히 큰 목화 집산지입니다.
목화(木花)는 무궁화과의 한해살이풀로 꽃모습은 무궁화나 접시꽃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것은 꽃 밑의 작은 "포"입니다.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삼각형 모양의 포 세 개가 꽃잎을 갈고리처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 갈고리 속에서 꽃봉오리가 생겨나 자라나는 모습도 볼 만 합니다.
하지만 꽃의 수명은 짧아 피고나서 하루 만에 시드는 것이 무궁화나무와 같습니다.
꽃은 8∼9월에 걸쳐 계속 피고 지며, 10월이 되면 열매가 익습니다.
그 열매가 터지면서 그 안에서 씨앗과 씨앗을 싸고 있는 흰 솜털이 드러납니다.
이 씨앗과 솜털을 분리해 솜털로 솜을 만들고, 그 솜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면 그것이 면綿입니다.
. 씨앗으로는 기름을 짜서, 페인트원료나 등유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목화뿌리를 캐내어 염색원료나 약용으로 사용하였고,
옛날 의복재료라 하면 명주나 면, 또는 짐승의 털이 고작이었습니다.
명주나 모피에 비해 면은 식물성으로 다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 재료인 목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었습니다.
인도는 기원전 4세기 경부터, 중국은 11세기 송나라 말엽부터 재배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4세기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뚜껑에 감추어 들여온 목화 씨가 시초가 되었습니다.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로 재배에는 성공했으나, 금방 면을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목화가 재배되는 것을 원나라 승려 홍원이 보고, 문익점에게 그 씨에서 솜털을 가려내어 솜을 만들고
실을 뽑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후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가 솜으로 실을 만드는 방차를 발명하고,
또 문영文英이 직조법을 발명하여 마침내 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의복사의 일대 혁신을 일으켰던 면綿의 생산은,
붓뚜껑에 감추어 들여온 목화씨앗부터 직조법의 발명까지 오로지 문익점 일가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진 속의 "목화꽃Cotton Folwer"은 한밭수목원 동원東園에서 자라고 있어요.
"우리생활작물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중 하나입니다.
목화를 생각하면 목화꽃이 피고난 상태에서 목화가 하얗게 열매맺은 상태만을 생각하기 쉬운데요,
우연히 이 목화꽃을 만나게 되었고 단 두 송이만 피어있어서 가끔씩 들를때마다 가만히 들여다보곤 하였는데,
이렇게 아이보리색 꽃송이가 여러 송이가 피어나고, 핑크빛 꽃송이까지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을 봅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유명한 명작이고, 유명한 명대사가 있어요.
가장 유명한 명대사라고 한다면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할 수 있겠네요.
번역하면,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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