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정

너는 나의 계절이고 나는 너의 봄이기를,,,,,,,

아름다운 여정

Paper Spoon

경주 금관총 환두대도에 새겨진 이사지왕은 누구일까?

안젤라Angella 2013. 7. 5. 06:00

 

 

 

경북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이 

 

 1600여 년 만에 답답한 녹을 걷어내고  신비로운글자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사지왕(以斯智王)"

 

칼집의 하단 금동 부분에 선으로 새겨진 이 글씨는 일반적인 신라 금석문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신라식 표기다.

 

수백 기에 이르는 신라 무덤에서 왕명(王名)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의 고대 고분 가운데 주인공이 확인된 것은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뿐이다.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나왔다고 해서 금관총에 묻힌 주인공을 이사지왕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송의정 국립중앙박물관장 고고역사부장은 "1921년 금관총 발견 당시 무덤 주인이 칼을 찬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의 무덤으로 볼 수도 있다.  "이사지왕은 남편이나 친척의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사지왕은 누구일까?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기존사료에는 이사지왕이라는 왕호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선 이사지왕을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초까지 신라의 최고 지배자였던 마립간(내물왕 때부터 지증왕 때까지 신라 임금을

 

뜻하던 칭호)들이  사용한 다른 이름 중 이사지왕이라는 이름이 나온 적이 없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글자가 새겨진 칼은 전형적인 5게기 후반의 칼로, 동그란 고리가 3개 달려 있어

 

당시의 환두대도 중 최고급품"이라며 "왕이나 왕족에 해당하는 최고위층이 쓴 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사지왕에서 "이"를 빼면 신라의 제 21대 왕인 "소지(紹知)"왕과 발음이 비슷한 "사지왕"이 되는데, 소지왕은 금관총 및

 

환두대도의 제작 시기와 겹치는 5세기 후반에 활동했다는 점에서 소지왕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형식 상명대 초빙교수도 소지왕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신교수는 "소지왕은 4, 5세기 김씨 왕통을 확실히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칼에 새겨진 "이"자는

 

 이사지왕이 자신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려는 표시가 분명하다."며 "이사지왕이 살아있을때 애용했던 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사지왕을 당시 "왕"으로 불렀던 고위 귀족 중 한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경북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년 건립)에

 

보이는"차칠왕등(此七王等)"과 같은 기록은 마립간이 아닌 당시 귀족왕으로 불렸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왕 아래에 있는 갈문왕(왕의 근친인 씨족장 등에게 주던 봉작) 등 고위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 왕 아래에 있는 갈문왕(왕의 근친인 씨족장 등에게 주던 봉작) 등 고위 귀족도

 

왕이라고 불렸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이사지왕은 고위 왕족의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며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왕을 진흥태왕(太王)으로칭했는데

 

이는 티왕 밑에 소왕(小王)이 어럿있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송의정부장은 "이사지왕을 고위 귀족으로 본다면

 

금관총, 천마총 등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의 무덤이라고 추정해 온 연구들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신라 유물 전문가는 "신라 김씨 왕족의 조상이 알타이 혈통이라는 학설이 있는데, 김씨 왕족이 정신적 고향으로 여긴

 

 알타이 산 부근의 카자흐스탄 이식(Issyk) 지방이 이사지왕의 "이사"발음과 비슷하다.  신라 왕족의 조상을 기리는 뜻에서

 

칼에 새긴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이사지왕은 신라의 장군 이사부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이사부는 6세기 법흥왕 진흥왕 시절에 활동했다는 점에서 시기가 맞지 않는다.

 

이번에 확인된 "이사지왕"외에 숫자를 나타내는 한자들에 대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나머지 유물까지 분석해봐야 숫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금관총(金冠塚)은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에 소재한 고분이다.  경주시 남방평지에 거대한 봉토가 즐비하게 서 있는

 

사적 제39호 노서리 고분군 가운데 하나이다.  1921년에 발견되어 "금관"을 비롯하여 황금 귀고리, 자루솥, 허리띠와 곡옥, 유리잔, 칠기 따위가

 

출토되었다.  금관총의 원형은 직경 50미터, 높이 13미터 정도로 고대 신라 특유한 돌무지 무덤으로 속에 목곽이 만들어져 있고,

 

옻칠한 목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관및 금제 관식(국보 제87호)와 금제허리띠(국보 제 88호)는 국보로 지정되었다.

 

 

 

21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