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안도 의주로 몽진(피란)했다. 전란의 와중에 백성은 그래도 나라님을 생각해 생선을 올렸다.
배고프고 지친 선조는 그 생선이 무척 맛있었다. "이 생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생선 이름이 "묵"이라고 하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고작 묵이라고 부르다니 당치 않다." 앞으로 은어(銀魚)라 부르라."고 명했다. 그렇게 묵이라 부르던 하찮은
생선은 은어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몽진 중 먹었던 "은어"가 자꾸 생각났다. 은어를 진상하게 해
먹어보니맛이 없었다. 옛날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선조는 "은어"라는 이름을 취소하고 예전대로 도로 묵이라고 하
라."고 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도루묵"이라 부르는 생선이 이름을 얻게 된 유래하고 한다. 선조가 아니라 고려의 한 왕
이라는 설(說)도, 조선 인조때 일이라는 설(說)도 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맛있다 또는 맛없다고 할 때 그렇게 판단하는 기준의 상당 부분이 과거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억,
즉 추억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나는 "음식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추억은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지도 모르겠다. 외식업자들은 한국에서 팔기 가장 어려운 음식이 한식이라고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중국, 일본
따위 외국 음식은 웬만큼 만들면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단다. 하지만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김치찌개나 된장
찌개처럼 평범한 한식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손님들이 " 이 음식은 원래 이런 맛이 아니다."고 할 때의기준은 추억이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 주던 음식은 이런 맛이 아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엄마마다 손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솔직히 요리
솜씨가 영 형편없는 엄마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해 주던 음식에 길들여진다.손님이 "엄마 손맛"을 기준으로 불평할
때 셰프는 난감하다. 이에 비해 어려서 먹어 보지 않은 외국 음식에는 이런 추억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맛있기만 해도
만족한다.
대전역이라고 하면 가락국수(우동)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대전은 특별히 가락국수를 즐기는 도시가 아니다. 대전 시민들은
가락국수보다 칼국수를 훨씬 더 즐겨 먹는다. 그런데 왜 대전역이 가락국수로 유명할까. 역시 추억 때문이다. 과거 서울역
에서 저녁 8시 30분 출발한 호남선 완행열차는 자정을 지나 0시 30분 대전역에 도착해 기관차를 바궈 0시 50분 다시 출발
했다. 열차 승객들은 기관차를 교체하는 이 20분 동안 승강장 간이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후다닥 먹고 열차에 다시 올라
탔다. 이 가락국수 맛을 잊지 못하는 이가 많아서 대전시에서는 대전역사 3층에 옛 맛을 재현한 가락국수집을 오픈했다.
대전역에서 팔던 가락국수가 진짜로 맛있었을까? 굵은 가락국수 면발은 빨리 익지 않는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엄청나게 밀려드는 승객들에게 가락국수를 팔려면 국수를 미리 삶아 놨어야 했을 것이다. 퉁퉁 부은 면발에 미지근한
국물을 부어 후딱 낸 그 때 그 가락국수를 지금 다시 맛본다면 아마 그렇게 맛있지는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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