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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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DaeJeon

소제동, 시간이 멈춘듯한 동네 100년 골목길

안젤라Angella 2020. 10. 26. 05:00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마당에 하나 둘 심었던 대나무가 방치된지 수십년 만에 울창

 

한 숲이 되었다. 대나무로 유명한 전남 담양이 아니라 대전 시내 중심가인 소제동 골목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이었다.

 

시원스럽게 길쭉길쭉 뻗은 대나무 숲 사이에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당

 

끝에 있는 한옥 건물인 ‘풍뉴가’에서는 브랜딩 차를 판다.

 

 

 

 

오래된 집 마당에는 집과 함께 늙어가는 나무가 한 두그루씩 있게 마련. 소제동 골목길 의 집들에도 철도관사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나무들이 있다. 그 중 한 곳이 ‘두충나무집’이다. 두충나무는 뼈와 혈관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난 한약재.

 

주인장이 약으로 달여 먹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겨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집 안에 들어가보니 흑백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이 있고, 오후 햇살을 받으며 마루에 앉아 느긋하게 볼 수 있는 만화도 있다.

 


대전역 주변에 있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인 최첨단 쌍둥이 빌딩 뒤편에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 대전에서 가장 오

 

래된 동네인 소제동의 100년 골목길이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 문화예술이 접목되며 젊은층과 장년층

 

모두가 찾는 뉴트로(New+Retro) 공간으로 급부상 중이다.

 

 

 

 


대전을 상징하는 노래는 ‘대전 블루스’다. 여수는 밤바다, 부산은 갈매기가 주인공이지만, 대전 사람들의 감정이 이입되는

 

대상은 열차다. “잘 있거라~나는 간다”고 외치며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대전발 0시50분’ 밤 기차가 바로 그 주인공

 

이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대전은 철도와 함께 성장한 근대도시다. 1895년(고종32) 지방관계 개혁 때 ‘회덕군 산

 

내면 대전리’로 승격된 대전은 당시 ‘거주자가 수십 호에 지나지 않고, 갈대가 무성하고 황량한 한촌’이었다는 기록이 남

 

아 있다. 그런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전이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원래 경부선이 공주를 경유하려 했

 

으나, 계룡산을 뚫어선 안된다는 유림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한밭 마을’이었던 대전이 근대철도 도시로 급속히 성장하

 

게 된 것이다. 1914년 호남선 대전역까지 개통되면서 대전은 사통팔달의 요지로 탈바꿈했다.



소제동은 약 100년 전 근대도시 대전이 태동할 당시 철도부설을 위한 일본인들이 짓고 살던 관사에서 시작됐다. 1910년

 

대전역 주변에 남관사촌과 북관사촌, 1920년대 소제동 동관사촌이 생성됐다. 남관사촌과 북관사촌은 한국전쟁으로 파괴

 

돼 거의 흔적이 없다. 동관사촌은 해방이후 서민들의 삶의 터가 되었다. 철도 개통으로 대전 인구는 급속히 늘었고 공장,

 

시장, 금융, 행정, 교육기관이 몰려들었다. 해방 직후 12만명이던 대전 인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100만명 이상으로

 

10배가량 늘었다.

 

 

 

 

어릴 적 대전역하면 생각나는 게 있다. 경부선에서 호남선으로 분기하느라 정차하는 5분 동안 열차에 급하게 뛰어내려

 

승강장에서 선채로 가락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흡입하던 추억이다. 이 기억 때문인지 대전은 여행의 목적지라기 보다는,

 

중간에 잠깐 쉬어가는 기착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실제로 대전은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려 반짝 관광객이

 

몰려들었지만, 이후 신도시처럼 콘크리트 건물 일색으로 개발돼 ‘노잼’(No+재미)의 도시가 돼 버렸다. 대전하면 ‘성심당

 

빵집’ 외에는 별 다르게 생각나는 먹거리도, 가볼만한 명소도 없는 도시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관사16호’에 들어가 보면 근대시기 한국의 주거양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 드러난 서까래

 

가 시선을 끈다. 실내로 처음 들어온 화장실, 온돌과 다다미를 사용한 방바닥 등 근대시기 한국의 주택 변화를 볼수 있다.

 

뒤로 연결된 대문을 나서면 또 다른 골목길로 이어진다.

 

 

 

 

소제동은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지도하던 소제호가 있던 곳이다. 우암은 별당인

 

기국정을 짓고 유림과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했다. 소제호는 일제시대 매립되고, 일부 흔적이 대동천으로 남았다.

 

소제동 인근의 대동천변 산책길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관사촌의 일부는 지난 8월 문화재청에 근대 문화재등록 신청을 마쳤다. 풍뉴가와 관사 16호, 마당집, 두충나무집 등 4채

 

다. 그러나 관사촌 밀집 구역이 아파트 재개발 사업에 포함돼 철거될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로봇 커피숍’이 있는 소제동을 인근의 대덕연구단지와 연계된 IT, BT 기업타운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

 

기도 했다. “대전역은 전국의 어디서든 1시간 이내에 찾아올 수 있다. 소제동은 그런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이다. 게다가

 

대전에는 카이스트를 비롯한 많은 연구소의 우수한 두뇌들이 배후에 위치하고 있다. 소제동의 독특한 공간적 컨텍스트

 

와 대전의 인재들이 합쳐진다면 차고 창업이 일어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스마트타운이 만들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