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공간에는 여러 사물이 있다.
가까운 꽃집에서 사 온 생화나 여러 날 말린 꽃이 있고, 만년설을 찍은 사진이 있고,
미술관에서 구매한 그림엽서가 있고, 강릉 바닷가에서 주워 온 하얀 조개껍데기가 있고,
부엉이와 올빼미 등 작은 동물 조각상이 있다.
물론 음악도 시내처럼 나의 공간에 흐른다.
나는 요즘 접시에 모과를 놓아두고 있다.
멀리 시골에 다녀올 때에는 그곳에서 딴 모과를 몇 개 사서 온다.
언젠가는 농원에 가서 바닥에 떨어진 모과를 우연히 주워온 적도 있다.
자연에서 막 자란 야생의 것일수록 향기가 진하다.
모과는 모두 방위에 향기가 있다.
또, 그 향기가 일정하다. 처음과 끝의 향기가 나란하다.
향기는 훌쩍 달아나지 않고 내 둘레에 가만히 서 있다.
모과는 참으로 온화하고 배려하는 성품이다.
모과는 노란빛과 둥그스럼한 외양으로 차분하게 앉아 있다.
순하고 순한 얼굴이다. 속마음을 감출 줄 몰라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겨울내내 이 모과를 보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을 생각이다.
눈보라가 세차가 몰아치는 날에는 이 모과를 바라보고 쥐고, 또 만지고 있을 생각이다.
그러면 모과는 마치 난롯불처럼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이다.
모과는 창을 통해 들어온 고운 겨울빛을 두 손바닥으로 쓸어 모아 놓은 것만 같다.
금모래를 쌓아놓은것만 같다.
나는 말쑥하고 반드러운 모과보다는 생김새가 울퉁불퉁한 모과를 더 좋아한다.
면이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한 모과를 사모해 시를 쓰기도 한다.
"나는 보자기를 풀듯 울퉁불퉁한 모과를 풀어보았지요.
시큰하고 떯고 단 모과향기 볕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의 조각 향기
이 천들을 잇대어 짠 보자기 모과
외양이 울퉁불퉁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나는 모과를 쥐고 뛰는 심장 가까이 대보았지요.
울퉁불퉁하게 뛰는 심장소리는 모과를 꼭 빼닮았더군요.'
노랗고 울퉁불퉁한 모과를 찬찬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에게 모과는 여리고 부드러운 것의 매력을 알게 한다.
백색의 겨울에 이 그윽한 노란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은근하게 끌어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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