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은 아직 꽃샘추위 이야기도 나오기 전, 겨울의 마지막이라 하는 2월 초순이면 눈부시게 하얀 빛깔의 꽃을 피우면서 봄바람을 즐긴다. 변산바람꽃의 속명은 너도바람꽃속이고, 바람꽃 종류의 속명은 대개 Anemone인데, 이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바람꽃 종류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갸냘프게 흔들린다. 그래서 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변산바람꽃이 한국특산종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전북대학교 선병윤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발표하면서 부터이니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선교수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어 "애란시스 변산엔시스 병윤 선(Eranthis Byunsanensis B.Y.Sun)으로 표기하고 있다.
변산바람꽃 학명의 의미에는 봄꽃이라는 뜻의 Eranthis와 발견된 지명인 변산Byunsanensis, 그리고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B.Y.Sun)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변산에만 변산바람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변산바람꽃은 제주도 거문오름을 비롯한 한라산 일대와 수리산, 설악산, 그리고 울산, 돌산 등지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특히 경기도 안산시 풍도에는 발에 밟힐까 염려하며 발을 들고 걸어야할 정도로 넓은 군락지가 알려지고 있다. 내변산에도 가마소, 와룡소 계곡과 운호계곡 등에 자생한다. 내가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변산바람꽃에 기인한다. 노루귀를 보고 싶어 안달이던 2006년 내소사 경내 뒷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야생화 사진작가들이 나누는 말을 엿듣고 졸래졸래 따라가 보게 된 청림마을의 변산바람꽃 군락지가 처음이었다. 봄바람이라기엔 아직은 차가운 2월의 양지 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개화한 그들을 보고 탄성이 저절로 나오며 새삼 자연의 신비를 느꼈다. 바로 전 가을의 참나무 낙엽을 이불삼아 북서풍과 폭설을 고스란히 견뎌내고 하늘하늘 돌 틈새로 올라온 흰 꽃무리들은 사진작가 뿐 아니라 나까지 땅바닥에 저절로 엎드려 조아리게 만들었다.
변산바람꽃의 키는 고작해야 10cm 남짓, 꽃크기는 50원 동전만하다. 햇볕이 잘 드는 부엽토가 낙엽에 잘 보존된 지역에 덩이뿌리를 감추고 있다가 전라북도 부안지방을 기준으로 2월 초순경 개화를 한다. 키가 작아 봄빛을 먼저 차지해야하겠기에 잔설이 아직 남은 2월을 손없는달(?)로 택한 그들이 생존 전략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먼저 줄기와 우리가 꽃잎이라 착각하고 있는 5~6장의 흰색 꽃받침이 나오고, 그 꽃받침 안에 사진 속의 초록색 깔대기 모양의 꽃잎(4~10장)이 주변의 흰 수술과 함께 솟아오른다.
변산바람꽃 등 바람꽃 종류는 대개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번식을 마치고 주변 나무들의 잎이 나기 전에 광합성을 해서 덩이뿌리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는 생활사를 가졌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부지런한 식물인 것이다.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너도바람꽃,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가 달리는 만주바람꽃, 비교적 꽃이 큰 꿩의바람꽃, 꽃대에 한 송이만 피는 홀아비바람꽃, 꽃이 노란 회리바람꽃 등이 봄에 피고, 8월에 설악산에서 피는 그냥 바람꽃까지 우리나라에 바람꽃 10여 종이 있다. 이 중 변산바람꽃이 제일 예쁘다는 사람이 많다. 변산바람꽃이 '미스 바람꽃'인 셈이다. 이처럼 신종 등록을 생일로 치면 올해 스물여섯인 변산바람꽃은 꽃도 예쁘고 스토리도 많다.
빛에 매우 민감하여 한 낮에 개화는 꿩의바람꽃과는 달리 개화시간이 길어 해질무렵에도 한들거리는 꽃을 볼 수 있다. 행여 혹하는 마음에 변산바람꽃을 캐어다가 집안 뜰에 키워보겠다 흑심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애써 말리고 싶다. 변산바람꽃의 꽃말이 "순결"이어서도 아니다. 일반인들은 키우기도 어려울뿐더러 깊은 뿌리에 하늘거리는 줄기는 보고만 있어도 가냘픈 때묻지 않은 맑은소녀의 모습이어서, 변산바람꽃은 그 곳에 있을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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