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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성터, 공산성

안젤라Angella 2008. 3. 2. 16:02

 

百濟의 城攄, 公山城

 

 

 

   충남 공주시 북쪽 금강변에 있는 공산성은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긴 475년부터 부여로 옮기기까지 63년간의 웅진성으로추측된다. 

 

오랫동안 '웅진성'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지난 1986년 성안에서 연못이 발견, 복원되면서이 같은 논란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이 연못은 백제 동성왕이 진귀한 물고기들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웅진성 당시의 대표적인 유적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동성왕이 진귀한 물고기를 길렀다는 연지蓮池

 

   문주왕 원년 (475년) 한산성으로부터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 (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때까지 64년간 왕도를 지킨 이 산성은

 

북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이며,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공산성은 성안에 군량과 군기를 저장하여, 강화, 광주와 함께전략적인 중요한 지역이었다.  

 

잘 알려져 왔듯 공산성은 백제의 왕도 웅진시기부터 오래 사연을 간직한 유적지이다.

 

 

 금서루의 단청

 

   고구려에게 밀려 공주로 천도한 백제는 공산성에 궁성을 마련하고 모든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왕권의

 

안정과 국력을 배양하는 한편 국제 교류에도 적극성을 보여 대내외적인 지위를 재확보하였다.

 

이 시기에 공산성에는 성곽과 함께 왕궁이 건설되고 임류각이나 연지같은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들이 건립되었다. 

 

  성내 유적은 금서루, 진남루, 공복루, 쌍수정, 연지및 만하루, 임류각, 광복루 등이 남아 있다.

 

금서루의 단청

 

 

 

 

 

 

 

 

 

공산성은 백제 멸망 직후에는 웅진도독부로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주로서,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의 감영 소재지로서지방 행정의 중심적 거점을 이루었다. 

 

특히 신라 헌덕왕 14년 (822)에 일어난 김헌창의 난은 공산성을 치열한격전장으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으로 인한 인조의 공주성 파천은 공주성의 요새지로서의 기능을재확인한 사례라 하겠다. 

 

백제때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공산성이란 이름도 이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공산성에는 진남루, 공복루, 서문, 동문이 있었고, 하수를 처리하는 수구문과 초소로 쓰였던 고대와 치성이 있었다.

 

공사성 안에는 아직 작은 마을이 있고, 조선시대의 구조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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