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정

너는 나의 계절이고 나는 너의 봄이기를,,,,,,,

아름다운 여정

안젤라가 만난 사람

정몽주의 후손, 내어머니 정여사님

안젤라Angella 2012. 12. 3. 07:00

        정몽주의 후손, 내어머니 정여사님

 

 

내 사랑하는 어머니 정여사님은 슬하에 다섯남매를 두셨다.  4남1녀.  내 남편은 우리 어머님의 두번째 아들, 즉 어머님의 차남이다.

 

내 남편은 내 어머님의 "작품"인데, 내 어머님이 당신이 힘들게 낳고 또 당신의 살과 뼈를 깎아서 키우고 교육시켜 만들어낸 어머님 평생에 결쳐 만들어낸 "대표작"이다.

 

내 남편이 태어날때 다른 아이보다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건강한 아기여서  어머님은 굉장히 힘들게 낳으셨다고 한다.  나중에 남편이 서울대학교에 가고 또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하고 서울대출신박사가 되었을때 그 아들이 태어날때부터 남의 두배는 힘들게 하더니 남의 두몫하려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태몽부터 벌써 특별했다고 말씀하셨다. 

 

내 어머님은 아무리 옛날분이라고 하더라도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아이들 쑴펑쑴펑 낳아도 괜찮을법한 펑퍼짐한 체형이 아니시다.

 

지방에서 아들을 낳고 키워서 서울대학교 보내기가 어디 쉬운일인가.  서울대에서 학부과정만 한 것이 아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에서 석사과정, 박사과정까지 했으니,,,,,,

 

내 어머님은 시아버님께서 "불성실한가장"이었기 때문에 거의 당신 혼자서 다섯아이를 키우다시피 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은 아이들을 낳아 놓기만 하고 돌보지 않으셔서

 

내 어머님 혼자서 아이들을 다 키우고 가르치고 하셔야만 했다고 한다.  그냥 펑범하게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집에서 생활하면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던 어머님의 바램과는 달리 어머님에게 주어진 현실은 냉혹한 것이었다고 한다.  내어머님은 정鄭씨이고, 연일鄭씨이고, 鄭夢周의 후손이시다.

 

강릉에 가면 鄭夢周의 사당이 있고, 鄭夢周 후손들이 모여사는 마을,,,,정鄭씨 집성촌,,,이 있는데 어머님의 친정이 이 동네이고, 어머님은 鄭夢周의 직계후손이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어머님 친정어르신들께 인사드리러 갔을때 마침 그때 鄭씨문중의 무슨 행사가 있었는데 제례를 지낼 준비를 하던중에

 

갑자기 제관이 복통을 일으켜서 병원으로 옮겨지고 "blank" 상태가 되어 버리고 대신할 사람도 마땅하지 않고 하던차에,,,,우리가 제관을 대신했던 적이 있다.

 

소싯적에 韓文을 쪼금 했었던 내가 남편만이 들을수 있는 목소리로 축문을 읊고 鄭씨문중의 외손자인 남편이 마이크 잡고 큰소리로 축문을 읊어서 어떤 문중행사가 "blank"처리

 

되지 않도록 한 적이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 부부와 어머님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집안대소사에 참석해서도 나는 손끝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도록 배려되고 보호되었다.

 

어머님을 모시고 어머님 친정마을에 갔을때 어머님은 친정집에 들러 친정식구들을 만나고 새로 지은 새친정집도 보여주고, 鄭夢周사당에 들러서 인사도 하게

 

하셨다. 어머님은鄭씨집안 사람들이 다 자랑으로 내세우는 鄭夢周사당을 보여주고 싶어하셨는데 당신의 며느리가 기대 이상으로 鄭夢周사당에 관심을 보이자

 

그 이후로 鄭씨집안 사람들, 어머님의 친정식구, 또 그 鄭씨집성촌 사람들은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또는 우리 부부가 어머님을 모시고 친정나들이 할때면

 

어머님을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졌고, 어머님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서 정중하게 대하곤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공개하지 않는 鄭夢周사당의 이모저모를

 

다 안내해줬고,,,,큰 자물쇠로 굳게 잠가놓은 사당문들을 하나씩 다 열어서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자신들만이 아는 이야기들까지 들려주곤 했다.

 

 

 

그리고 그후 10여년전부터는 어머님을 모시고 그 마을에 가면 어머님은 친정식구들에게 "내가 나중에 같이 못오더라도 내며느리가 鄭夢周사당에 가고 싶어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게 하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볼 수 있게 하고 자물쇠를 다 열어 보여주고 우리 문중에 가보로 내려오는 옛날책들도 다 보여주라.  내 며느리이고

 

내겐 친딸이상으로 소중한 사람이니,,,"고 당부해 놓는것을 잊지 않으셨다.   이를테면 鄭씨문중에서 鄭夢周 사당 "출입증"을 발급해 주신 것이었다.  

 

교동에 있는  어머님댁에 가면 어머님은 늘 당신이 쓰시는 "안방"을 내게 내어주셨다.  내가 어머님께 뵈러 간다고 연락하면 어머님께서는 며칠전부터 안방에 난방을

 

따뜻하게 하고, 정갈하게 청소해서 편안하게 쉬라고 하시고는, 내가 어머님방에서 편하게 쉬고 더러는 장거리 이동(주행)에 지쳐 잠들면 자고 싶은만큼 잠자도록 그대로 두시었다.

 

내가 쉬는동안 남편은 어머님이랑 둘이서 "두모자"의 애틋하고 정겨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것이다.  어머님 뵌지  1개월도 안 되었는데 마치 1년만에 멀리서 만난것처럼,,,,,

 

내어머님은 가게를 하셨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 어머님은 동구밖에 식당을 차리고 당신이 손수 음식을 만들고 가게를 운영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내남편을 키우셨고, 똑똑하고 착실하고 공부잘하는 내 남편을 교육비 지불해서 서울대에 보내고 또 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도록 하신 훌륭한 어른이시다.

 

내어머님은 "가자미식해"를 좋아하고 잘 만드신다.  나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가자미식해"를 처음 먹어 보았는데, 남편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가자미식해"라서

 

나도 남편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먹었더니 지금은 나도 남편 못지 않은 "가자미식해" 매니아가 되었다.  "해물모듬깍두기"도 어머님이 잘 만드시는 반찬중의 하나인데,

 

늦가을에 바다에서 나는 해물을 여러가지 이것저것 듬뿍듬뿍 썰어넣고  무우도 듬성듬성 거칠게 썰어넣고 다대기에 버무린 반찬인데, 이걸 저온에서 4주 정도 숙성해서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  어머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어머님 일손을 도와드리려고 하면 어머님은 손사레를 치면서 절대 허드렛일을 못하게 하셨다.  나는 그냥 어머님

 

하시는 일이니 며느리로서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님에게 가게는 생활비 벌기 위해 선택한 힘든일이어서 당신은 힘들게 하셨을지언정 내 며느리에게만은

 

절대로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신게 있으시다며 내가 하다못해 카운터 봐 드리는 것도 힘드니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냥 너는 남편이 만들어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하고 싶은일하면서, 예쁜옷 입고, 화사하고 풍요롭게,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침에 모닝콜을 어머님께서 해 주실때가 있다.

 

어머님은 새벽에 주문진에 있는 수산시장에 가시는데 싱싱한 해물을 좋은 가격에 사거나 내가 좋아하는 해물이 많이 나와있거나 하면 기분이 좋아지셔서내게 전화를

 

하셨다.  나는 잠결에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바다소리를 듣기도하고  꿈결처럼  바다처럼 아련하게 들리는 어머님 목소리 들으면서, 어머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조금 더 자고 싶은 그 달콤한 아침잠의 유혹을 모른체하지 못하고 아침잠을 더 자기도 했다.   다음날이면 어머님의 사랑을 담은 택배가 도착하곤 했다.

 

시어머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편하게 들으면서 달콤하고 느긋하게 자는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

 

 

 

 

 

시댁에서는 명절에 음식을 만들면 거의 대부분을 여자들이 다 해내야 한다.  시댁은 남자들이 주방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는 분위기라서, 그런 분위기가 이상했는데

 

시댁가서 첫명절에 명절음식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아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앞치마까지 찾아입고 내 옆에 앉아서 음식재료를 같이 손질하고 내가 전을 부치면

 

같이 부치고 나물을 무치면 같이 나물 무치고,,,남자가 주방에 들어온 것도 낯설은 풍경인데 그 집안에서 제일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 손수 주방일을 하고 있으니,

 

당신은 아까와서 허드렛일도 시키지 않은 당신의 작품인 아들이, 그것도 영화 "사랑과영혼(Ghost,1990)"의 주인공들이 연출하는 포즈 이상으로 로맨틱한 장면,,,데비무어가

 

 

 

도자기 빚는 물레를 돌리면 패트릭 스웨이지가 뒤에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감싸 안는 모습을 연출하는 있으면  뭐라 말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보고 있자니 믿었던 당신 아들이

 

여자에게 빠져서 허우적거리는게 탐탁지 않다는 생각할 겨를도 없으시다.  어머님은 아들 눈치보느라 내게 일을 시킬 생각조차 못하고 괜히 허둥지둥 아들이 행여나 밀가루라도 묻을까

 

전전긍긍하시다가, 아들에게 전유어 한 접시 줄테니 나와서 대청마루에 가서 먹으라고 해도 당신 아들이 들은체도 않고  이거 다 해놓고 와이프랑 같이 먹는다고 하니,,,그러면 수정과

 

 담아 곶감쌈 띄워 줄테니 그거 먹으라고 해도 들은체만체 하니,,,,,보다못해 어머님이 그러면 너네둘다 일 그만하고 나와서 수정과나 먹으라,,,하신다.  당신 아들이 주방일 하는건

 

보기 싫으신가 보다.  남편은 요리하는걸 좋아한다.  게다가 식당집 아들이라서 음식만드는걸 보면서 자란 사람이라 다른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식재료에 대한 안목이 있고,

 

요리법도 잘 알고, 어지간한 요리는 다 할 줄 알고 그 중 몇가지 요리는 아주 맛있게 요리할 줄도 안다.   남편은 시간나면 한번씩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을때 어떤 요리가 나왔는데 그거 생각하며 만들었다는듯,,,,스테이크도 맛있게 잘 굽고 스파게티도 만들줄 알고 김치찌개는 최고로 맛있게 잘한다. 

 

이럴때 당신이 하는 요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남편은 그거 어느새 다 만들어 놓고 또 다른 요리할 준비를 한다.  남편이 요리를 해서 접시에 담아내면서 

 

 나 칭찬받을일 했는데 나 예쁘지않아?  이런 표정 지으면 얼른 볼에 kiss라도 해야 한다.  처음엔 순수하게 볼을 내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눈깜작할 사이에 슬로우모션으로,,,,,,

 

 

 

시댁이 있는 강릉에서는 새해설날 하루전날 "묵은세배"를 하는 풍습이 있다. 동짓달그믐날 오후에 친척어른들을 찾아 뵙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절을 하는,,,,,

 

그렇게 친척어른들께 다 인사를 드리고 설날 아침이 되면 새해첫날이라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한다.  나는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내 옷차림을 다 하고 설맞을 준비를

 

한 다음에 어머님 설맞을 채비를 해드린다.  고급화장품으로 기초화장부터 섬세하게 해서 메이크업을 해 드리고 머리도 드라이기로 손질해 드리고 세팅기로 컬을 말아서 곱게 머리손질

 

해드리고 어머님 입으실 한복도 미리 다 손질하고 챙겨서 입으시는거 도와드리고 섬세하게 살펴서 채비를 해 드린다.  그리고 세뱃돈으로 쓰시라고 한국은행에서 새로 발행한

 

"신권"을 두둑하게 그리고  얌전하게 "비단누비지갑"에 담아 어머님께 드린다.  젊었을때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키우느라 특히 내남편 키우느라 바빠서 하지 못했을 그런일들을

 

이제는 며느리인 내가 챙겨서 어머님이 늦게라도 고운모습 하시라고 챙겨드린다.  그리고 세배를 하고 집안어른들, 친척어른들께 인사드리러 가면 우리 부부는 최대한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서,,, 무궁화5개짜리 호텔 "VIP"수준으로 의전해서 어머님을 우리 승용차에 모시고 설날 나들이에 나선다.   아버님이 소홀하셔서 마음 고생하셨을"사랑받는여자"

 

컨셉을 보완해드리려고 늦어서라도 화사한 모습 하시라고 아들내외,,,서울대출신 박사인 아들, Scientist Researcher인 아들내외가 어머님을 깍듯하게 모시고 다닌다,,,

 

서울대출신인 박사아들 내외가 어머님 뒤에서 든든하게 받치고 있고 모시고 있으니 너희들도 우리 어머님께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어머님 앞에서 남편자랑한 집안여자어른 앞에서는 우리 어머님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우리 내외가 어머님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표정은 부드럽고

 

차분하지만 카리스마있게,,,인식하도록 보여주면 그 사람은 "깨갱"하고 입다물고 구석에 있거나 과거에 우리 어머님 앞에서 허튼소리 한 것을 발등찍고 후회하고 싶도록 만들어버린다.

 

내 어머님이 혼자서 그렇게 긴 시간동안 아이들 키우면서 너무 힘들어도 말할데가 없고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보따리 싸서 친정으로 가고 싶어도 아이들이 눈에 밟혀 차마

 

가지 못했던 그 친정길을,,,,이제는 우리 부부가 승용차로 모시고 가서 어머님 가고 싶은곳 가게 해 드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게 해드리고, 돈 쓰고 싶은데 돈 쓰게 해드리고,,,

 

내 어머님이 힘들어도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사셨을 그 인고의 세월을 그렇게라도 보상해드리고 싶은 것이다.  "행복한 친정나들이"를 하실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다.

 

 

 

 

우리가 결혼하려고 강릉 교동에 있는 어머님댁에 인사드리러 갔을때 어머님은 내가 예쁘고 총명해서 그리고 반듯해 보여서 첫눈에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셨다.

 

사실은, 내남편이 그전에 어머님께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나는 그녀와 결혼할 것이고, 어머님께는 며느리가 될 터이니 어머님이 무조건 예뻐해주셔야 하고, 예뻐도 예뻐해

 

주셔야 하고 설령 약간 미운짓을 해도 예뻐해주셔야 하고, 다시 예쁜짓을 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셔야 하고, 최고로 많이 사랑해주셔야 하고 잔소리해도 안 되고 절대 시집살이

 

이런거 시키면 절대 안 되고 일도 시키면 안 되고 고부갈등 같은거 일으키면 내가 엄마(내어머님) 다시는 안 보겠다, 어머님댁 반경 100km 밖에 얼씬도 안 한다"고  "SNU style"로

 

어찌나 단호하게 엄포를 놓고 다짐을 받아놓은 다음이라,,,,어머님의 "HOPE"인 아들,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믿는 아들 말이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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