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글은 섬세한 글이다
"쉽다"와 "어렵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쉽다를 고르는 사람이 많으리라.
쉬운 것은 미덕이고 어려운 것은 세상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엔 세상이 저마다 속는척 하는 트릭이 숨어 있다.
신문 기사를 쓸때, "쉽게 써라"는 주문을 끝없이 받아 왔다. 쉽게 쓰는 것은 잘 쓰는 것이고 어렵게 쓰는 것은 못쓰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쉽게 쓰기"는 소통의 전략일뿐이다. 그런데 쉽게 쓰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문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쉽게 쓰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쉬운 글을 원하는 사람은 이해력이나 집중력, 분석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봐도 좋다. 그들은 어렵게 쓰면 이해를 못하거나
읽기를 포기한다. 신문이 쉽게 쓰는 것은, "읽기"의 역량이 떨어지는 많은 사람들을 잡고자 하는 전략일 뿐이다.
쉬운 글이 반드시 좋은 글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소통은 유식한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무식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상황이다. 유식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의 상황을 짐작하기어렵다.
이걸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이 유식한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일은 정말 쉽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유식한 사람은
다 알아 들을 것이다. 소통의 측면에서 보자면, 쉬운 글은 무식한 사람들을 위한 유식한 사람들의 배려이다.
어려운 글이란 대개 복잡한 글일 경우가 많다. 복잡한 글은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다. 복잡한 생각은, 그 글의 맥락에서 찾아지지 않는 사전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이미 공유되고 있는 지식의 바탕 위에서 소통되는 글들은, 그 지식을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사뭇 어렵다.
또 어려운 글은, 몹시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것에 접근하는데 노력이 필요한 경우일 수 있다. 그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다 이해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눈 밝고 생각이 잘 돌아가는 몇몇의 독자에게 깊고 완전하게 이해되기를 원한다. 소통의 길은 좁되, 소통되고 나면 쉬운 글보다 훨씬 더 큰 효용을 지니는
메시지일 경우가 더 많다. 난해시는 어렵지만 그것이 풍부하게 이해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어려움의 정체이다.
어려움은 소통의 가파른 길과 그 길 끝의 더 크고 깊은 쾌감을 함유하고 있다.
어려움은 계급적이고, 귀족적인 본질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 모두가 향유할 수 없는 지식의 권력이 거기에 숨어있다.
쉽고 단순하다는 것에 매료되는 것은, 일정하게는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 가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물론 어렵고 복잡한 것은 또 하나의 인위와 허영일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생각의 상봉에 오른사람들이 갑자기 졸박(拙朴)을 말하는 건,
어려움의 권태와 무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 번도 어려워져 보지 않은 사람이 이 졸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꾸밈없는 외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더 쉬운 인생과 졸박의 대각(大覺)이 같은 명함인 것은 아니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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