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완성한 여자, 레오노르 피니
사랑스러운 악녀, 아름다운 여전사, 섹시 여신, 아르헨티나 태생의 레오노르 피니의 자화상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다.
한눈에도 그녀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형이 아니다.
강렬한 눈빛언어,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빨강머리,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몸짓은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고 개성도 강하며 열정적인
예술가였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피니는 자유분방한 삶, 돌출 여행, 화려한 연애 편력, 도발적인 패션으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찬미의 대상이
되었던 화가다. 구혼자도 많았지만 결혼을 거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다간 독신녀의 원조이기도 하다. 피니가 가부장제 남성사회가 강요하는
순종적인 여성상을 거부한 해방된 여자라는 증거는 유명한 일화가 말해준다.
봄의 수호자 속의 여인, 레오노르 피니, 1967년
어느날 레오노르 피니는 한 초현실주의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에 추기경의 주황색 예복을 입고 나타나 당돌하게 말했다.
"나는 사제복을 몸에 걸쳤을 때의 신성모독적인 느낌이 좋다." 이 그림의 메시지도 여성의 자의식과 정체성 추구다. 꽃처럼 화려한 술잔을 빌려
여성이 창조성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리학에서 그릇, 상자, 화덕처럼 오목한 형상은 여성의 성기를,
칼이나 창, 막대기처럼 길고 뽀족한 형상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예술가로서의 명성은 일찍부터 얻었지만 그림은 독학으로 터득했다. 유럽의 미술관에 걸려있는 세계적인 명화가 그녀의 미술교사였다.
레오노르 피니의 창작에너지는 남성화가들을 능가했다. 책의 삽화, 무대디자인, 카펫, 직물 디자인, 심지어 소설을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직 자신만이 삶과 예술의 주인공이라는 레오노르 피니의 인생관은 어록에서도 드러난다.
먼친척, 저녁급행열차, 레오노르 피니, 1966
"나는 내게 운명 지어진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선 저항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주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신념과 의지로 예술의 길을 개척했던 한 여성의 자화상이면서 자율적인 삶을 갈망하는 모든 여성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녀가 눈빛언어로 묻는다.
여성들이여! 자신만의 인생을 선택할 용기와 자신감을 가졌는가?
레오노르 피니(Leonor Fini, Argentina, 1908~1996, Argentina)-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성화가, 몽환적이고 신비한 에로티시즘과
양성적인 인물, 신화적 풍경들을 주로 그렸다.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의 욕망에 예속시키기를 거부하였으며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특유의 판타지로
전면에 드러냈다. 피니는 1930년대 초반 파리로 이주하였다. 그는 파리에서 앙드레 부르통,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등 초현실주의 대가들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와 다다" 주요 초현실주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는 공식적으로 초현실주의 그룹에 들어가는 것은 거절하였다.
그는 여성의 자율성은 존중하지 않고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의 욕망에 예속시키는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적대적이었다. 반면 프라다 칼로, 레오노라
캐링턴과 같은 여성 화가들과 깊은 유대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노선을 굳건히 하였다.
양성애자였던 피니는 매혹적인 여성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처럼 신비하고 강한 성적 매력을 발산하였고, 많은 시인과 화가들에게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자신의 몸으로 구현하는 뮤즈였다. 에른스트, 콕트, 주네, 엘뤼아르, 클라우스만, 키리코 등이 그의 매력에 흠모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17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고양이는 그의 작품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종종 마술적인 그리고 에로틱한 힘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피니는 연극과 오페라, 발레를 위하여 많은 무대 미술과 의상을 디자인하였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주네의 희곡작품 "하녀들" "발코니"가 대표적이며
세익스피어와 보를레르,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책에 삽화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70년대 초에는 소설책을 쓰기도 했다.
또한 가면과 카펫, 직물 등을 디자인하였다. 그는 1996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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