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갱이" 강경은 "강가의 햇볕고을"이다. 그래서 "강(가람 강)+ 경(볕 경)"자의 "江景"이다.
금강 하구 동쪽 기슭에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강 건너 서쪽 부여로 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 그 누구라도 넋이 빠진다.
몽롱하고 황홀하다. "놀뫼(論山)"라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강경 아래 남쪽은 호남평야 들머리의 전북 익산이다. 너른 들판과 야트막한 산,
그리고 느릿느릿 벙벙하게 흐르는 금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만큼 강경은 기름진 땅에 농사지을 물이 넘쳐나는 부자 동네였다.
옛날 강경에선 밥 굶는 일이 없었다. 강경은 늘 사람과 온갖 물산으로 흥성거렸다. 서해바다 뱃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장사꾼들로
시끌벅적했다. 하루 100여 척의 배가 강 위에 줄을 섰고, 2만~3만 명의 상인이 침을 튀며, 흥정을 하기에 바빴다.
자연스럽게 원산에 이어 조선 2대 내륙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3대 시장(1-평양, 2-강경, 3-대구)으로 거대 중간상인 집단인 객주까지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객주 이응선 한옥 고택이 그 좋은 예다. 강경은 이제 논산시(13만여 명)에 속하는 작은 읍이다. 주민도 모두 해봐야 1만 1000여 명이나
될까. "은진(논산)은 강경 덕에 산다"는 말은 꿈같은 옛말이 되었다. 영락없는 "빛바랜 흑백사진"이다. 어느 한순간 일제히 동작을 멈춘
"정지된 도시"라고나 할까. 대전지방법원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논산지청, 논산경찰서가 아직까지 강경 읍내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게 기특하다. 강경은 그만큼 "뿌리 깊은" 동네다. 강경은 어슬렁어슬렁 걸어도 두 세 시간 정도면 거뜬하게 돌아볼 수 있다.
거리마다 곰삭은 젓갈 냄새가 스멀스멀 우러난다. 젓국 닮은 우중충한 낡은 건물과 오래된 일본식 가옥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구: 중앙독서실, 젓갈창고, 현재 강경역사관)
강경읍 염천리의 젓갈시장에서 시내 쪽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서 있는 빛바랜 빨간 벽돌건물로 1905년 자본금 50만 환의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되어, 한일합방 후 일제에 의해 한호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으로 개편되면서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한일은행 강경지점,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면서 근대 강경 상권을 대변하던 대표적인 금융시설이다.
연면적 60평, 지상 1층 규모로 서향이며 건물 오른쪽에는 창고가 뒤쪽에는 살림집이 있다. 코니스 부분의 화려한 장식과 규모에 비해
작은 철문으로 된 입구가 은행으로서의 권위와 기능적 고려를 갖추었다.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지붕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원형을 살려 다시 복구되었으나, 옆의 창고건물은 부서진 채로 남아있다.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밀물에 쓸리고
썰물에 뜨는
하염없는 개펄
살더라, 살더라
사알짝 흙에 덮여
목이 메는 백강 하류
노을 밴 황산 메기는
애꾸눈이 메기는 살더라
살더라
박용래(1925~1980) "황산메기" 전문
강경역사관 전시실에 있던 물품들, 위 사진은 전시실의 베틀기계.
강경북옥감리교회(구, 강경성결교회, 강경교회),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96번지.
전통적인 비례를 벗어난 정방형의 건물이지만 평면 구성과 상부의 가구구조가 한옥의 건축방법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내부 벽돌조 위의 회반죽 마감과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킨 연등천장은 단순한 목조건축의 구조미를 보여주고 있다.
목재를 다루는 수법과 가구기법 등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화에 따른 기술의 변화를 살필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강경성결교회. 강경성결교회는 1918년 10월 18일 창립되었다. 이후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초대감독이며 경성신학교(현 서울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영국인 존 토마스 목사가 강경성결교회의 건축부지 매입을 위하여 1919년 3월 20일에 방문하였다.
토마스 목사는 교회 근처 옥녀봉에서 만세 운동이 한창인 것을 목격하고 고난받는 한국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내려와 강경교회
예배당터를 발품팔아 측량하고 있었다. 이때 웃통을 벗은 일본인들이 달려 들어 무차별 구타하여 스물아홉군데에 골절상을 입게 되고
강제 투옥을 당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영국과 일본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어 영국이 승리하게 되었고, 일본은 존 토마스 목사에게 당시 돈
5만불을 지불하게 되었다. 미국으로 떠난 존 토마스 목사는 보상금의 일부를 헌금하여 강경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고 1923년에 봉헌하였다.
일본은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기독교를 박해할 목적으로 문화정책의 일환인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하지만 강경성결교회는 주일학교 학생들의 최초 신사참배 거부운동(1925년 10월 11일)과 일본의 역사 강요에 대한 거부운동인 상애어린 이단사건
(윤판석어린이), 이헌영목사의 재림신앙고수로 인한 투옥및 교단 폐쇄(1943년)등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에 맞서 의연히 신앙으로 대항하였다.
이후 6.25 동란 중에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신앙을 사수하며, 주일예배를 하루도 끊이지 아니한 일, 한애청의 활동, 북한군이 물러가고
유엔군이 강경으로 진입할 때 종을 울려 피난간 주민들에게 자유의 소식을 알린 일, 공중폭격시 포탄이 교회 가운데로 떨어졌음에도 은혜로 불발된 사건등
강경교회는 고난의 역사에 휘둘린 민중들에게 나아갈 희망과 위안의 빛을 제시하는 등대같은 역사적인 족적을 남긴 교회이다.
구 강경성결교회의 건축물은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건축학석 독특성과 종말론적 신앙공동체의 종교미학이 응축되어 있고, 성결교회의
신학적 순수성을 표현하고 있는 빛나는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예배당이다. 강경성결교회는 교회 부흥으로 홍교리로 이전하고
구 강경교회 자리는 북옥감리교회에서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는데, 현재는 빈 건물로 남아 있다.
굳게 닫힌문, 반투명한 유리, 뿌옇게 낀 먼지가 시야를 방해하는 유리를 통해 넌즈시 바라다본 강경북옥감리교회 내부 모습
한옥교회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건축 양식으로 매우 독특한 건축구조와 평면구성을 보여준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시기 건축기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옥교회의 현존사례가 극히 드문 현실을 감안하면 이 건물의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어, 2002년 9월 13일 등록문화재 제 42호로 등록,
관리하고 있다.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로 정면과 측면의 비율이 거의 1:1인 정방형의 평면으로 중앙 부분에 있는 나무 주초 위에 세워진
두개의 고주로 남녀의 공간을 구분한 칸막이 구조이다. 초기 한옥교회는 건물 전면에 별도의 문을 두어 남녀신자를 구분하였던 것이다.
또한 교회의 기능에 충실한 평면의 변화와 상부 가구구조의 구성기법등은 초기 기독교 한옥 교회의 근대화에 따른 건축적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가구 구조는 9량 구조로 일반적인 가구법에 따라 내부의 고주를 협칸의 기둥열에 맞춰 세우고 대들보와 퇴보를 걸면 상부가구도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내부도 신랑(nave)과 측랑(aisle)으로 구분되어 있어 공간의 활용도 용이하다. 더욱이 강단 쪽의 고주 하나를 생략함으로써 화중석에서 강단을 향하는
시선의 장애를 없애고 강단 앞부분에 충실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여건과 기능에 충실한 계획 수법으로 볼 수 있다.
목조건축에 있어 이러한 감주법은 구조에 대한 기술적 축적이 있을때만 가능한 것으로 당시의 건축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호남병원 건물터(구, 신한다이아몬드, 현재는 젓갈백화점)
1914년에 기업한 호남병원은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인 정연해씨가 원장으로 있었던 건물로 병실 10여 개를 갖고 있었던 병원시설이었다.
이후 한때 "호남호텔"로 이용되기도 했다. 건물의 배치는 동향으로 중복도식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고전적인 풍모와 충남지역 현존하는 유일의 근대 병원시설이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던 건물터였다.
건물 양식은 일본의 목구조를 먼저 완성 시킨후 서양식의 석조나 조적조의 장식요소로 외장하여 겉에서 목조건축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 6.25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병원으로도 이용되었으며, 당시 뒷편에 한옥 살림집을 증축하기도 했다.
한때 요정으로 사용되었으며 철거되어 안채만 남아 있었다.
수소문끝에 찾아낸 호남병원 건물터는 2011년 건물 전체가 헐리고 새 건물이 지어졌으며 현재는 젓갈백화점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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