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는 줄기만 보면 난(蘭)과 비슷하게 생겼다. 녹색줄기가 일자로 시원하게 뻗어나 청초한 느낌을 준다. 이들 줄기 사이에서 젓가락 굵기의 대가 솟고, 그 끝에 네댓 송이 꽃이 달린다. 꽃에서는 아카시와꽃과 풍란을 닮은 향기가 풍겨나온다. 벌과 나비가 없는 겨울에 꽃가루를 옮겨줄 매개체를 유혹해야 하는 비정한 운명 때문인지, 그 향기가 아득할 정도로 짙다. 한줄기를 꺾어 차 안에 놓으면 처음에는 달콤하던 향기도 5분이면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줄기와 꽃대를 시원하게 뻗어 올리며 시종일관 꼿꼿하던 수선화도 꽃망울을 터뜨릴 때는 고개를 숙인다. 꽃이 바닥을 향하는 이 모습을 보고 그리스신화는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나르시스로 표현했다.
사실 제주도에 피어나는 수선화는 두 종류다. 제주 토속어로 "몰마몽"이라고 하는 것과 "금잔옥대(金盞玉臺)"라고 부르는 종류다. 몰마몽에 대해서는 "말이 먹는 마농(마늘)"이라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는 이도 있고, 마농뿌리처럼 생겼지만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라는 사람도 있다. 유래야 어찌 되었건 토속어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제주에 수선화가 있었다는 의미다. "몰마몽"은 흰 꽃잎 위에 여러개의 노란 꽃잎이 있으며, 노란 꽃잎 사이에는 흰 꽃잎이 섞여 있다. 길이나 해안가에 제멋대로 피어나는 수선화 중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금잔옥대"란 꽃모양이 백옥으로 만든 받침 위에 황금빛 잔이 놓인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금잔옥대"를 보면 꽃 안쪽에 술잔 모양으로 노란색 꽃잎이 있고, 바깥에 하얀 꽃잎이 이를 감싸고 있다. 사람들이 정성들여 심어 놓은 수선화는 대부분 "금잔옥대"다.
사실 수선화의 매력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다. 성산일출봉 계단을 오르다가 잠시 숨돌리는 곳에서 만나기도 하고, 산방산 앞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길가에서 두세송이 피어난 꽃을 보기도 한다. 제주도 오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다랑쉬 오름에도 한대 몇 군데의 야생 수선화 군락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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